사진 정리_ 오늘하루 라이프




비브르 사이에 이은 두번째 책에 넣을 사진을 정리하느라 며칠동안  몇십 기가 속을 헤엄치며 참 분주했다. 
불과 2년동안 미국동부에서 서부,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한국 여러곳등 참 많이도 다녔고 부지런히 찍었고 
끊임없이 내가  포착하지 못한 것이 있을까 발을 움직였던 나날들을  돌아보니
새삼, 그래도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생각했다. 


반려견 팔월이와 함께 한시간 즈음 뛰고 들어와 다시 사진첩을 펴고는 좀더 세밀히 정리를 하려는데 문듯, 딴 짓이 하고 싶다. 
내게 딴짓이란 이렇듯 뭔가 조잘 조잘 적는 것.
마치 누군가와 이야기 하듯.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못할 만한 쓰잘 데 없는 글을 쓰다가 팔월이가 말을 하면 참 좋겠는데 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여전히 팔월이는 내말을 잘들어 주는 '일등생명'이긴 하지만.

스스로 증인이  되지 않으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나의 삶 중에서, 
다행히도  어떤 부분은 사진으로, 어떤 부분은 글로, 어떤 부분은 팔월이의 표정을 통해 기억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고.


FOOD INC, 잡식동물의 딜레마. 영화


누구에게나 먹거리는 인생최대의 관심사중 하나가 아닐까,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내게도 한가지 철칙이 있다면 건강한 음식을 먹자는 것이다. 말라서 볼품없는 몸도 비대해져 게을러 보이는 몸도, 보기 싫은 건 당연하고 건강에 무리가 있다는 건 누구난 아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니 먹거리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으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생기는 행복감은 우리에게 큰 인생의 동기를 부여한다. (나만 그런가..::) 하지만 맛있는 음식 보다도 요즘시대에 더  맛있다고 평가 받는  음식은 건강한 음식이다.  재료부터 조리까지의 과정 속에서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음식은 분명 먹지 말아햐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 조차  알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  (육류나 조류 그리고 해산물 아니, 채소도 포함하여) 관해 이야기 하다보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있다. " 그런 것 까지 다 알면 먹을 게 없잖아." 
뭐,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계속 몰라야 할까? 

 <푸드 주식회사> ,이  다큐멘터리는 굉장히 용감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영화 속에는 맥도날드사 의 햄버거를 먹고 죽은 아이를 위해 입을 연 어머니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말한다. 굉장히 많은 소를 기르는 축사에서는  소들의'변' 을 그대로 가축과 함께 방치 할 수 밖에 없고 몇년동안 그렇게 자란 소가 도축 될 때에 고기와 함께 그 '변'은 대기업에서 주문한 햄버거용패티에 들어갈 수 있고, 조리되었다고 하더라도 면역성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위험 할 수 있다고 .  그러나 맥도날드는 축산 시장에서 가장 큰 클라이언트이다. 그리고 후에 두명의 아이가 똑같은 이유로 죽었으나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패티를 만들어낸다. 

그 많은 소들이 먹는 사료는 옥수수로 만든 사료이다. 우리가 초식동물이라고 배운 소는 살이 찌기 위해 그냥 옥수수도 아닌 싼값에 많이 재배 할 수있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먹는다. 그리고 그 사료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에 수출되어 지고 있다.  이 사료를 만드는 가장 큰 회사는 말한다.  "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먹을 수록 나는 부자가 된다." 고. 
나도 영화를 보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형마트에서 우리가 고르는 '유전자 변형 옥수수가 들어간 제품'은 생각 보다 많았다. 탄산 음료에까지 옥수수가 들어갈 줄은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었을 테니. 

영화는 이 두 주제를 중심적으로 미국 농가에서부터 마트까지의 굴레를 담았다. 

어제부터 구제역발생 기사가 인터넷을 휩쓴다. 이번엔 소도 돼지도 아닌 소와 돼지 양쪽에서 일어났다.  
무엇이 잘 못 된 걸까?
일년이 멀다하고 신종 병이 생겨나더니 이젠 일년이 멀다하고 같은 병이 확산된다. 

 황윤감독의 <잡식가족의 딜레마> 는 구제역에서 부터 우리의 식탁 까지의 고민을 담고있다. 
감독은 아이와 함께 돼지 농가에 가서 키우는 현장을 직접 보고 도우며 한 아이의 엄마로서, 그리고 남편의 아내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솔직히 털어 놓았는데  개인적으로 남편의 캐릭터- (처음엔 먹을 땐 그런 거 신경 안쓴다고 말하시던 분이 난 원래 치킨은 안좋아했어 .~ 라고 말하는)가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했고 우리모두의 모습이 영화속 그의 케릭터에 투영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나는 베지테리언으로 6년을 보내다가 2년전부터 다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먹지 않고 한국에서 살기란 , 레스토랑을 고르는 일보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버티기가 힘들었고 사실 눈으로 보이는 고기가 아니더라도 한국음식에는 고기 국물이 바탕이 된 음식이 너무도 많았기에 모르고 먹느니 차라리 보고 먹자 주의로 바뀌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집에서 요리를 해 먹거나 외식을 함에도 선택할 수 있는 자리일 때에- 웬만하면 고기를 피하는 편이다.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고기사랑은 심각하다. 대학때부터 영화일을 하며 지금껏 모든 회식자리에는 고기가 있었고 모든 모임에는 고기가 있어야만 했다.  일이 끝나도 고기가, 기분이 좋아도 고기가, 술을 마셔도 고기가 존재하는 나라인 것이다. 
잡식 가족의 딜레마라는 영화에서는 말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기라 부르기 전에 그들을 지구에 사는 동물로  인식하는 순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동의하는 바이다. 



 



제인구달 강연회를 다녀와서_2014 nov 라이프






그러니까 아티스트가 아닌  환경운동가라든지 박사 등등의 활동가들이 내한하면 나의 관심사는 그들이 하는 말이 아닌 그들의 모습이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이미 책에 다 정리 되어 써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이날 강연회에도 그녀가 말했듯이 하고 싶은 말은 책에 다 했다고. )
하지만 그 많은 인파를 뚫고 조용히 앉아 그녀의 말을 듣으러 간 이유는 아마도  
이 사람의 눈빛은 어떠할까 손짓은 어떠 할까 어떤 빠르기로 걸을까 말할까 그리고 어느만큼의 여유로 사람을 대할까 같은 이를테면 새로운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또한 존경하는 이에 대한 선망 으로 부터 일 것이다. 
배우나 감독같이 관중을 대하는 것이 어느정도 익숙하고 공식적인 일에 당연히 포함 된 사람이 아니라서,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사람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사람보다 침팬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러니 수줍어 할까? 아니면 말을 많이 하지는 않겠다. 라고 -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천천히 또박 또박 자신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자 곧 생각이 변했다. 
그녀가 굉장히 말을 잘했기 때문이다.  너무도 정확히 하고 싶은 말을 잘 정리해서 들려주었기에 어린아이들도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침팬치 언어로 인사 할때는 귀엽기 까지 한 모습들을 보면서 자신안의 확고한 신념이 있어 몇십년 동안 그걸 지키고  또 소통을 연습한  사람들이란- 결국 지구안의 모든 동물 (그러니까 인간도 포함하여) 들과 점점 더  소통이 가능하구나. 라는 생각으로 번져갔다. 
천천히 걷지만 힘이 있었고 웃고 있지만 날카롭기도 했고 어릴적의 아름다운 미모에 견줄만한 농익은 카리스마가 보여서 멋있었다. 
당당하면서도 듣는이들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것 - 그것은 아마도 진실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재밌었던 질문 중에 하나는 어린아이가 한 질문이었는데 구달박사의 엄마와 침팬치가 물에 빠진다면 누구를 먼저 구할 거냐는 질문에 
처음엔 대답할 수 없다고 하다가 둘다 구하려고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했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제인구달의 책 " 생명사랑 십계명" 12p에서 거론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선 이렇게 이야기 한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 수 있겠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 라고 대답한다. / 그러나 물 속에 빠진 것이 당신의 혹은 다른 사람의 개라면 , 당신은 뛰어 들 수 있겠는가?/

그 어린아이가 이 책을 읽었을리는 만무하지만 몇달 전 즈음- 산책을 하고 돌아와 쓴 일기를 보니 아이와 나는 비슷한 고민을 했음은 분명한 것 같다. 

2014. sep.

대로변에서 큰 개가 차에 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도 예상치 못했고 대로변으로 시선을 두던 사람 또한 많이 없었던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차와 사람은 갈 길을 가기 바빴다. 오로지 우연히 그것을 목격한 나만이 목석처럼 굳어 개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의사를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얼마후에 여주인이 달려와 통곡을 하며 개를 끌어안았다. 차들은 그녀를 피해 하지만 갈 길을 가려고 씽씽 거리며 바삐 달렸고 여주인의 통곡은 더 커졌다. 드디어 사람들은 그녀를 보기 시작했다. 그녀를 발견한 주변 사람들은 어서 도로에서 나오라고 소리쳤고 결국 사람들에 의해 인도 쪽으로 옮겨졌다. 그녀를 옮겨놓은 사람들은 곧이어 위험에 쳐한 한 사람을 구했다는 안도의 말소리를 남기고는 움직이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후에 다시 한 남자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중에 그 둘을 발견했다. 남자는 그녀 근처에서 한참을 서있었고 그의 개는 마치 미친 듯이 으르렁 데기도 하고 벌떡 벌떡 점프를 하기도 하고 그렇게 알아들을 수 없는 의사를 표명하며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남자가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그녀 품의 개는 이미 죽었다. 이미 시간이 너무 흘렀고 이제 서야 개가 병원에 옮겨진다 해도 살아날 가망이 없었으리라. 아니 어쩌면 즉사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한 상황에서 내가 알게 된 한가지는 이곳은 인간이 지배해 버린 지구라는 별 인거다. 그러나 지구를 점령한 인간들의 세상에선 사람이 우선일지 모르나 개에겐 그렇지 않았다. 그 남자의 개는 지금 슬퍼하고 통곡하고 있었다. 적어도 함께 사는 별의 종족의 죽음을 지키고 말이다. 개에겐 사람이나 개나 다 똑같은 생명일 뿐인 것이다. 개에게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사람도 사는 곳이었다. 나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잠이 오지 않았다.  고작 나라는 인간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만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킬유어달링 영화






이 시기, 소위말하는 상실의 시대-  2차세계대전을  직접 체험한  세대들 . 그리하여 후로 50,60년대에  삶에 안주하지 못하고 
사회로 매정한 대접(beating)을 받아서  비트세대 라고 불려다던 이들-
마약을 포함하여 문학에서도 새로운 , 획일적인 규정에서 벗어나 더욱 날것같이 감각적인 것들을 원했던 그들의 지지중에서
- 시를 (까다로운 강단에서 벗어나 )거리로 돌려보내자' 는  여전히 동의하는 바.

이시기와 비슷한 시기의 글  중에서 로맹가리의 소설'흰개' 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베트남전쟁과 미국의 인종차별문제 거기에 프랑스에서 시작된 68혁명 까지 더해진다. 
죽고 다치고 슬프고 울고 다시 술을 마시고 마약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웃을 수 없었던 시대가 아니었을 까. ?
그리하여 그 때에는 적어도 예술을 하며 몸을 사지리진 않았고 돈 때문에 중요한 무엇을 포기하는 일은 없지 않지 않았을까?

참으로 사치스러운 이야기겠지만 다시 태어난 다면 60년대에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그랬다면 나는 과감한 누군가와 어울리며 과감한 일들을 자행했을 텐데-라는 상상과 더불어.
킬유어 달링의 비트세대. 몽상가들의 혁명세대들 같이 그 시대의 날라다니는 젊은이들을 매력적으로 담은 영화들을 보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 보는 일 일것이다....(억지 동의인가..ㅎ) 

다니엘 래드크리프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던 그 분위기- 소심한듯하면서도 신뢰를 주는 - 역시나  그러한 이간이 되어 주었고. 
긴즈버그의 시를 배위에서 읊을 때 - 정말 젊은 시인같아 좋았다.  데인드한은 모자란 듯 넘치지 않게 매력을 표출해 줘서 좋았고.
사람들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어린시절과 닮았다고 하는데 디카프리오 젊은 시절이 더 와일드한 파워가 있지 않나..???ㅎㅎ 
이를테면 요즘 남자들은 - 특히 이 영화의 데인드한은 초식남같은 이미지니까. 
무튼. 다른배우들도 모두 겹치지 않고 앙상블이 좋았는데 이럴 땐 역시나 감독이 현장을 잘 컨트롤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역시 재즈의 전성시대 답게 , 이영화에서는 무엇보다 재즈들어야 한다. 내내-


주어라. 나누어라. 잃어라.-

BLACK FISH 영화

얼마전 외신에서 돌고래의 자살 뉴스를 읽고 뭔지 모를 죄책감에 슬펐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돌고래 소재의 다큐가 있다는 걸알고 보게 된 영화  블랙피쉬. 


바다를 좋아하면서도 바닷 속 생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없었고 특별히 돌고래에 관한 그 어떤 지식도 없었던 터라 보는 중간 중간에 스톱시켜 검색을 하기 바빴다. 그만큼 확실히 알고 싶었던 정보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그만큼 믿기 어려웠던 정보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것들 중에 가장 놀랐던 것은 돌고래의 수명이었다. 인간과 거의 비슷하게 80-100년의 세월을 살 수 있으며 인간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 집단을 이룬다. 하지만 인간에게 포획되어 수족관에서 살아 가야하는 돌고래들. 그 후의 삶.  아이를 잃은 엄마의 괴성.
누가 들어도 울부짖는 그 소리를 외면 하며 유괴를 일삼는 인간들. 그리고 앵벌이 하듯 쇼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돌고래. 
먹이를 주지 않으며 협박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더 강한 돌고래와 함께 지내며 쌓이는 정신병들. 
인간에게 순종적일 수 있으며 애교를 부릴 줄 알고 귀여운 외모를 지녔다는 이유로 과연 우리는 무슨 짓을 하는 걸까..


영화는 미국 최대 규모의 쇼장  씨월드에서 돌고래가 오랜기간 함께 지낸 조련사를  먹어버린 사건과  비슷한 사건들을 따라가며 사건 피해자와 함께 조련사 일을 했지만 더이상 조련를 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돌고래의 잘못이 아님을 밝히고 앞으로의 인간이 가져야할 동물에 대한 자세에 대해 제시한다.  물론 나 또한 감독의 의견에 백배 공감하며 영화를 보았고 사무치게 가슴이 아팠다.
 모든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필시 대가를 치룬다는 것을  매번 잊는 인간의 무능함일지 무기력함일지 무례함일지 모르겠는 행동들. 
뉴스에서  거제시에서 벌이고 있는 돌고래 만지기 사업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자칫  우리의 아이들 까지 위험해 질 수있음을 모두가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며 돌고래는 알다시피 우리와 똑같이 감정이 있는 동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것은 반대 입장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는데, 영화의 자막에도 나오듯이 씨월드는 모든 인터뷰와 촬영을 거부했고 심지어  사건당시의 녹화 테입까지도 폐기 처리 했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웠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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